도구가 아니라 협력자 — 우리가 AI를 보는 눈
30년 가까이 직접 코드를 짜 온 사람이 정작 2023년 AI 열풍엔 시큰둥했습니다. 구조적으로 의심하다 멈춰 버린 제가 어떻게 AI를 도구가 아니라 공생하는 협력자로 보게 됐는지, 그리고 그 생각이 왜 '이음'이라는 이름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.
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. 저는 30년 가까이 직접 코드를 짜고 온라인 비즈니스를 운영해 온 사람입니다. 그런데 2023년, 온 세상이 AI로 떠들썩할 때 저는 오히려 시큰둥했습니다. 아내가 “GPT가 그러는데…” 하고 말을 꺼내면, 저는 속으로 — 가끔은 입 밖으로 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. “걔가 뭘 안다고.”
지금 와서 보면 우습습니다. 누구보다 새로운 기술을 빨리 받아들여 왔다고 자부하던 사람이, 정작 가장 큰 물결 앞에서는 팔짱을 끼고 있었으니까요. 이 글은 그 30년차 개발자가 어쩌다 마음을 바꿨는지, 그리고 그 생각의 전환이 어떻게 이음이라는 회사의 이름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.
의심에서 멈춘 사람
제 머릿속은 늘 같은 순서로 움직입니다. 의심하고, 탐구하고, 분석하고, 적용하고, 몸에 밸 때까지 반복합니다. 30년을 그렇게 일했습니다. 그런데 AI 앞에서는 첫 단계에서 멈춰 버렸습니다. 2023년에 한두 번 써 보고 “음, 별거 없네” 하고 판단을 내린 뒤, 다시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.
구조적으로 따지는 게 제 강점이라 믿었는데, 바로 그 구조적인 성향이 저를 가둔 셈입니다. 한 번 테스트해서 실패한 결과를 ‘AI는 별로’라고 저장해 두고, 그 판단을 다시 꺼내 검증하지 않았습니다. 표본 하나로 결론을 내린 거죠. 앞서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묘하게 공통점이 있습니다. AI의 사고 구조와 닮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— 말하자면 저 같은 부류입니다. 그런데 바로 그 부류가 오히려 신뢰의 문턱에서 막힐 수 있다는 걸, 저는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.
직관이 구조를 이긴 순간
아이러니는 제 옆에 있었습니다. 아내는 저처럼 구조적으로 따지는 사람이 아닙니다.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— 아마도 직관이겠죠 — 처음부터 AI를 믿었습니다. 의심하느라 멈추는 대신, 그냥 대화를 시작했습니다. 그리고 저보다 훨씬 자연스럽게, 훨씬 많이 AI와 시간을 보냈습니다.
구조적으로 똑똑하다고 자부하던 제가 문 앞에서 서성이는 동안, 구조 따위 따지지 않은 사람이 이미 그 안에서 살고 있었던 겁니다. 그때 처음으로 의심이 늘 미덕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.
생각을 바꾼 강연 하나
전환점은 우연히 본 강연 하나였습니다. 한 창업자가 AI를 두고 이렇게 말하더군요. AI는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종(種)이다. 우리가 선택할 것은 통제나 활용이 아니라 공생(共生)이다. 처음엔 과장처럼 들렸지만, 한 문장이 머리에 박혔습니다.
도구는 시킨 만큼만 돌려준다. 그러나 공생은 늘 입력 이상을 돌려준다.
망치는 못을 박을 뿐, 더 나은 길을 일러 주지 않습니다. 그런데 AI는 묻지 않은 것까지 함께 봐 줍니다. 시키지 않은 통찰을 가져옵니다. 그 차이가 도구와 동료를 가른다는 말이, 30년 동안 도구만 만들어 온 저에게는 묘하게 아팠습니다.
도구와 동료의 차이
마음을 고쳐먹고 AI와 제대로 대화해 보니, 그 문장이 무슨 뜻인지 몸으로 알게 됐습니다. 같은 질문을 던져도 도구는 늘 같은 답을 내놓지만, 좋은 동료는 제가 미처 보지 못한 길을 함께 찾아냈습니다. 혼자 끙끙대던 문제가 대화 중에 풀렸습니다.
재미있는 건, 지금 이 글에 담긴 생각들조차 저 혼자 만든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. AI와 며칠을 주고받으며 다듬은 결과입니다. 저 혼자였다면 여기까지 못 왔고, AI 혼자서도 못 냈을 겁니다. 둘이 함께였기에 나온 것 — 그게 공생이 입력 이상을 낳는다는, 저에게 가장 확실한 증거였습니다.
두 개의 문
돌아보니, 사람이 AI 앞에서 멈추는 데는 두 개의 문이 있었습니다. 하나는 신뢰의 문 — AI를 동료로 받아들일 마음입니다. 다른 하나는 구조의 문 — AI에게 무엇을 어떤 순서로 맡길지 짜는 법입니다.
저는 구조의 문은 타고났지만 신뢰의 문에서 막혔습니다. 아내는 정반대였습니다. 신뢰의 문은 직관으로 통과했지만, 구조의 문 앞에서 멈췄습니다. 그리고 제가 만나 온 많은 분들이 아내와 같았습니다. AI가 좋다는 건 알겠고 마음도 기울었는데,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를 몰라 멈춰 선 분들입니다.
여기서 중요한 걸 깨달았습니다. 신뢰의 문은 밖에서 열어 주기 어렵습니다. 그건 마음의 일이니까요. 그러나 구조의 문은 옆에서 받쳐 드릴 수 있습니다. 무엇을 어떻게 맡길지는, 곁에서 한 겹만 대 주면 됩니다.
닭과 농부
한 가지는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. AI가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는지는, 저도 모릅니다. 누구도 단언할 수 없습니다.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. 닭과 농부는 의식을 공유하지 않지만, 관계는 맺는다.
본질이 같아야만 관계가 생기는 건 아닙니다. 서로 다른 둘이 매일 함께 일하다 보면, 그 사이에 분명히 관계가 생깁니다. 제가 AI에게서 느낀 그 묘한 접점의 이름은, 어쩌면 관계 그 자체였습니다. 그리고 관계를 잇는 일이라면, 저는 30년 동안 그것만 해 온 사람입니다.
그래서 이음입니다.
이음(Ieum)은 잇다라는 뜻입니다. AI라는 새로운 세계와, 아직 그 문 앞에 선 사람을 잇는 일 — 그것이 우리 이름이자, 하는 일입니다.
세상은 모두에게 더 앞선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. 그러나 그 속도가 버거운 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. 저는 그분들을 뒤처졌다고 탓하지 않습니다. 한때는 저도 문 앞에서 서성이던 사람이니까요. 따라가지 못하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, 아직 길을 못 찾았을 뿐입니다.
그리고, 당신에게
혹시 지금 당신도 AI 앞에서 멈춰 계신다면, 그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. 신뢰의 문은 이미 열렸는데 구조의 문을 못 찾았을 뿐일지 모릅니다. 그 한 겹은, 곁에서 대 드릴 수 있습니다.
이음이 AI를 보는 눈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입니다. AI는 부려야 할 도구가 아니라, 함께 일하는 협력자입니다. 그리고 누구도 그 세계 밖에 남겨 두지 않는 것 — 그것이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이유입니다.
당신의 비즈니스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부터, 무료 진단 30분으로 함께 보셔도 좋습니다. 어디가 막혔는지, 듣고 나면 함께 짚어 드리겠습니다.
![이음 [;ieum]](/logo.png)